집에서 번역을 하다가 문득, 너무 갇혀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조용히 코트를 걸치고 스타벅스로 향한다.
누군가는 “커피 한 잔에 4,700원? 사치 아니야?”라고 묻겠지만,
나는 그 비용을 단순히 음료값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는 한두 시간의 공간 대여료, 그리고 몰입을 위한 이동식 사무실에 가깝다.
우리 집에서 스타벅스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린다.
버스를 타도 되지만 굳이 걸어간다.
몸을 적당히 움직이면 머리가 맑아지고,
나도 모르게 굳어 있던 긴장이 풀린다.
걸으면서 오늘 번역 일정도 다시 정리하고,
블로그에 쓸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본다.
왕복 40분.
이 시간이 요즘은 꽤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이를 키우고 집과 일을 반복하다 보면
이렇게 온전히 나 혼자만의 걸음으로 채워지는 시간이
생각보다 귀하다.
스타벅스에 도착하면 자동으로 ‘일 모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적당한 조도, 일정한 음악,
바로 집중이 되는 특유의 공기가 있다.
나는 이곳에서 번역을 하거나 블로그 글을 쓴다.
집에서는 오히려 잡음이 많고 번잡해 집중이 흐트러질 때도
스타벅스에서는 자리를 잡고 앉는 것만으로
일하는 리듬이 금방 살아난다.
그래서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은
단지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내게는 몰입을 사는 시간이다.
사치가 되는 순간과 사치가 아닌 순간
물론 매일, 출근길마다, 아무 의미 없이 들러
습관처럼 커피를 사 마신다면
그건 나에게도 사치일 거다.
그럴 바엔 차라리 스타벅스 주식을 조금씩 사는 게 낫다.
정말로 매일 마시는 금액이면
작게나마 자산이 쌓이니까.
하지만 나처럼
“오늘은 일이 많다, 집중이 필요하다”
“책 한 권 읽고 싶은 날이다”
“기분 전환 겸 아이디어 좀 정리해야겠다”
이런 목적이 있을 때 가는 스타벅스는
전혀 사치가 아니다.
오히려 나를 유지시키는 하나의 루틴처럼 느껴진다.
만남과 공간의 기준도 다르다
사람을 만날 때도 기준이 있다.
동네 엄마를 만나 수다를 떨 때는
굳이 비싼 데 갈 필요가 없다.
무인카페나 이디야면 충분하다.
하지만,
일적인 만남이 있거나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 이야기하고 싶은 날은
스타벅스가 더 편하다.
공간 자체가 대화를 정리해주고
말에 힘을 실어주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나는 카페 선택에도
나름의 ‘이유’를 둔다.
커피 값보다 더 큰 가치는 ‘채워지는 시간’
오늘도 쿠폰을 하나 받아두었던 게 있어
아메리카노는 공짜였다.
그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괜히 밝아졌다.
하지만 사실 쿠폰이 있든 없든,
오늘처럼 번역 한두 건을 마무리하고,
책 몇 페이지를 읽고,
블로그 글 아이디어를 적어두며
머릿속이 정리되는 날이면
4,700원이 전혀 아깝지 않다.
때로는 커피 값보다
그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더 큰 가치를 만든다는 걸
나는 점점 더 깨닫는다.
조금의 여유가 만들어내는 내적 변화
스타벅스에서 나와 다시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크게 무언가를 이뤄서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내가 잘 사용했다는 느낌 때문일까.
일과 육아로 정신없이 흘러가는 날들 속에서
이렇게 ‘나를 위한 작은 틈’을 만들면
다음날의 나까지 달라진다.
에너지가 회복되고,
생각이 단단해지고,
다시 번역 일과 글쓰기를 해낼 힘이 생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말한다.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은 사치가 아니다.
내 삶을 정돈하는 작은 투자다.
그리고 그런 투자는,
돈보다 더 큰 가치를 남긴다.